꽃보다 먼저 정리부터 해야 했던 플라워샵의 하루
플라워샵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흔히 “꽃을 좋아해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막상 하루를 들여다보면 꽃을 만지는 시간보다 주문을 정리하고, 메시지를 확인하고, 누락이 없는지 다시 점검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경기도에서 1인 플라워샵을 운영하는 한 사장 역시 비슷했다. 아침에 매장 문을 열자마자 확인해야 할 것은 꽃 상태가 아니라 휴대폰 알림이었다. 전날 밤 늦게 들어온 인스타그램 DM, 출근 시간에 맞춰 쏟아지는 카카오톡 주문 문의, 단골 고객의 “이번에도 알아서 예쁘게 부탁해요”라는 짧은 메시지까지.
문제는 이 모든 주문이 서로 다른 채널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주문이 많아질수록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기억으로 처리하는 방식’이 굳어졌고, 그만큼 실수에 대한 불안도 커졌다.

주문이 늘어날수록 더 바빠지는 아이러니
아이러니하게도 장사가 잘될수록 여유는 사라졌다. 하루에 한두 건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방식이, 주문이 다섯 건, 열 건으로 늘어나자 한계에 부딪혔다.
어느 날은 픽업 날짜를 착각했고, 또 어느 날은 고객이 요청한 색감을 놓쳐 다시 제작해야 했다. 이 사장은 “꽃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리가 안 돼서 생기는 문제”라는 걸 점점 체감했다.
그때 주변에서 흔히 들리던 말이 떠올랐다. “요즘은 AI로 다 한다더라.” 하지만 막상 AI를 떠올리면 자동화, 기계적인 응대, 감성 없는 문장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플라워샵이라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AI를 ‘자동 판매 도구’가 아니라 ‘정리 도우미’로 쓰기 시작하다
이 사장이 AI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아주 사소했다. 주문 메모를 정리하다가 “이걸 누가 대신 정리만 해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한 일은 단순했다. 고객과 나눈 대화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AI에게 붙여 넣고 이렇게 요청했다.
“아래 주문 내용을 기준으로 제작 일정, 요청 사항, 주의할 점을 한 번에 정리해줘.”
놀랍게도 AI는 장황하게 흩어져 있던 메시지를 항목별로 정리해 주었다. 날짜, 예산, 분위기, 전달 목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사장은 이때 처음으로 AI를 ‘대신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 ‘머릿속 정리를 글로 옮겨주는 도구’로 인식하게 됐다.
주문 정리가 되자 마음부터 달라졌다
정리된 주문 문서를 하나씩 쌓아가면서 변화가 나타났다. 가장 큰 변화는 심리적인 여유였다.
예전에는 “혹시 빠뜨린 게 있지 않을까”라는 불안이 항상 따라다녔다면, 이제는 정리된 문서를 보며 체크할 수 있었다. 제작 전날 다시 한 번 AI 정리본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실수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
또한 주문 내용을 다시 읽으면서 고객의 의도를 더 정확히 이해하게 됐다. “화려하지 않게”라는 말이 단순히 꽃 종류를 줄이라는 의미인지, 색감을 낮추라는 의미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AI가 정리해 준 문장은 오히려 사장이 고객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복되는 문의, 반복되는 설명에서 벗어나다
플라워샵을 운영하다 보면 비슷한 질문을 하루에도 여러 번 받는다.
“이 가격이면 어떤 스타일이 가능해요?”
“기념일용으로 많이 나가는 꽃이 있나요?”
“당일 제작도 가능할까요?”
이 사장은 이런 질문에 매번 새로 답변을 작성하느라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AI에게 자주 받는 질문과 본인의 답변 스타일을 학습시키듯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중요한 점은 ‘자동 답변처럼 느껴지지 않게’였다. “꽃집 사장이 직접 설명하는 말투로, 너무 딱딱하지 않게”라는 조건을 덧붙이자,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문장이 나왔다. 이 문장들은 상황에 맞게 조금씩 수정해 사용되었고, 응대 시간은 줄었지만 고객 만족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주문 기록이 쌓이자 보이기 시작한 운영의 힌트
AI로 주문을 정리한 문서들이 쌓이면서, 예상하지 못한 장점도 나타났다.
어떤 요일에 기념일 주문이 몰리는지, 어떤 예산대가 가장 많은지, 특정 시즌에 반복되는 요청은 무엇인지가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장은 AI에게 “최근 한 달 주문의 공통점과 특징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 결과를 보고 꽃 발주량과 제작 시간을 조정했다. 이전에는 ‘감’으로 하던 결정이 조금씩 근거를 갖게 되었다.
이 변화는 매출을 급격히 늘리는 것보다는, 운영을 안정시키는 데 더 큰 역할을 했다.
AI를 쓰면서도 지키고 싶었던 한 가지 원칙
이 사장은 여전히 모든 걸 AI에게 맡기지는 않는다. 꽃의 조합, 색의 균형, 최종 완성물에 대한 판단은 사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주문 정리와 기록, 반복 설명 같은 부분은 AI가 훨씬 정확하고 꾸준하게 해준다. 덕분에 사장은 꽃을 만드는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AI를 쓰면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됐다”는 것보다 “덜 지치게 됐다”는 점이었다.
플라워샵 운영에서 AI는 선택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이 사례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어서 가능했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이, 너무 바빠서 선택한 방법에 가깝다.
플라워샵 운영에서 AI 활용은 거창한 자동화 시스템이 아니라, 흩어진 정보를 정리해 주는 조용한 조력자에 가깝다.
꽃은 여전히 손으로 만들고, 감성은 사람이 전달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소모되던 에너지를 AI가 대신 처리해 줄 뿐이다.
이 사장은 지금도 말한다. “AI 덕분에 장사가 커진 건 아니지만,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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